얼어붙은 세상
The World Thunderstruck
현실 유리. 사랑하는 사람이 현실과 마주하여 느끼는 부재의 감정이나 현실감의 상실.
disreality. Sentiment of absence and withdrawl of reality experience by the amorous subject, confronting the world.
1. I. "나는 전화를 기다린다. 이 기다림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를 불안하게 한다. 나는 뭔가를 해보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방안을 왔가갔다해본다. 그 친숙함이 보통 때 나를 위로해주는 갖가지 물건들, 회색 지붕, 도시의 소음, 이 모든 것이 무기력해 보이고 분리되고, 마치 인간이 한번도 산 적이 없는 황량한 별자리 또는 자연처럼 얼어붙어 보인다. "
II. "좋아하는 화가의 화첩을 뒤적거린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몰두할 수 없다. 그림의 가치는 인정하지만 그 이미지들은 차디차 나를 권태롭게 한다."
III. "혼잡한 식당에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나는 괴로워 한다(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지만). 괴로움은 군중/ 소음/ 장식품(조잡한 예술품 kitsch)에서 온다. 하나의 비현실적인 덮개가 유리 천정으로부터, 샹들리에로 부터 떨어진다."
IV. "일요일 점심 시간 무렵 혼자 찻집에 앉아 있다. 유리창 너머 저쪽 벽에 붙은 포스터에는 콜뤼슈(프랑스의 코미디언)가 얼굴을 찌푸리며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나는 추위를 느낀다."
(사르트르의 [구토]에서처럼 세상은 나 없이도 가득차 있다. 세상은 거울 뒤에서 사는 유희를 한다. 아니 세상은 수족관 안에 있다. 나는그것을 아주 가까이서 들여다 보지만, 그것은 다른 물질로 만들어져 나와는 분리된다. 나는계속해서 내 밖으로, 마치 마약을 먹은 사람마냥 현기증도 흐릿함도 없이, 정확함이란 것 안으로 추락한다. "오 내 앞에 펼쳐진 이 장엄한 자연이 마치 내게는 니스칠한 세공품처럼 얼어붙어 보인다네 ........")
2. 내가 참석해야 하는(또는 직접 관여해야 하는) 모든 일반적인 대화가 내 살갗을 벗기고 오싹하게 한다. 그건 타인들이, 내가 제외된 그들의 언어에다 지나친 투자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긍정하고 반박하며, 궤변을 부리고 과시한다. 도대체 포르투갈이, 개를 사랑하는 일이, [프티 라포르퇴르, Petit Rapporteur]의 최근판 방영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나는 세상을, 저 다른 세상을 일반화된 히스테리로 본다.
3. 현실 유리(disrealty)의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또는 그 내도(advent)를 지연시키기 위해, 나는 불쾌한 기분에 의해 나를 세상에 연결시키려고, 뭔가 비난하는 연설을 해본다. "로마에 내리자 이탈리아가 온통 시시하게 보이더군. 진열장에 있는 물건도 하나도 탐나는게 없었어. 10년 전에 실크 와이셔츠와 결이 고운(fine) 양말을 샀던 그 콩도티가街(Via dei Condotti)에도 싸구려 물건밖에 없더군. 게다가 공항에서는 택시가 14000리라나(7000리라 대신) 요구하지 않겠어. 뭐 그날이 '그리스도 성체절'이라나. 그 나라는 두 가지 접에서 다 손해를 보고 있더군. 취향의 다름은 폐지하면서도 계급의 차이는 여전히 존재하니 말야, 등등." 게다가 나를 세상에 연결시켜 활기차게 만드는 이 공격적인 태도가 완전한 고독의 상태로 - 현실 유리의 그 음울한 물 속으로 - 바뀌기 위해서는 조금만 더 밀고 나가면 된다. "모든 사람들이 얘기하고 있는 중인 피아차 델 포폴로 광장은 (축제일의)자신을 과시하고 있었어(언어 또한 그런게 아닐까, 과시한다는 것?). 가족, 가족들, 뽐내며 걷는 남자들! 처량하고도 소란한 국민, 등등." 나는 여분의 존재다. 그러나 내가 제외된 그것이 부럽지 않다. 이중의 장례. 그렇지만 언어라는 마지막 실(적합한 문장의 실)에 의해 이렇게 말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의 가두리 안에 나를 붙잡아두는 게 아닐까? 젊은 베르테르의 그 니스칠한 세공품처럼 차츰 멀어져가고 얼어붙어가는 그 현실에(오늘날의 자연은 곧 도시이다).
4. 나는 현실을 한 권력 체제로 받아들인다(experience). 콜뤼슈, 식당, 화가, 축제일의 로마,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존재체제(system of being)를 강요한다. 그들은 무례하다. 그런데 무례함이란 단지 충만(plenitude)이란 게 아닐까? 세상은 가득차 있고, 충만이 그 시스템이다. 그리고 더욱 모욕적인 사실은 이 시스템이 내가 더불어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자연'처럼 제시된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사람(사랑에서 배제된)이 되기 위해서는 콜뤼슈를 우습다고 생각해야 하고, J식당이 괜찮다고 여겨야 하며, T의 그림이 아름답고, 그리스도 성체절의 축제일이 활기에 넘친다고 여겨야만 하는것이다. 권력을 감수할 뿐만 아니라, 그 권력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현실을 사랑해야먄 한다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는(사랑하는 사람의 미덕을 위해서는)그 얼마나 구역질나는 일인가? 그것은 마치 생트-마리-데-브와 수도원(Monastery of Sainte-Marie-des-Bois)에서의 쥐스틴과 같다.
내가 세상을 적의에 찬 시선으로 보는 한 나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나는 미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때로 이런 불쾌한 기분이 고갈되어 더 이상 어떤 언어도 갖지 못하게 되면, 그때 세상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닌(나는 비현실에 대해 말할 수 있으며, 비현실에 대한 예술작품은 아주 훌륭한 작품도 많다) 현실 유리적인 것이 된다. 세상은 현실에서 도주하여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며, 그리하여 내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의미란(그 패러다임은) 더 이상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콜뤼슈/ 식당/ 화가/ 피아차 델 포폴로 광장과의 관계를 더 이상 정의 내리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권력의 노예/ 공범/ 증인이 아니라면, 권력과 어떤 관계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5.
6. 때로 세상은 비현실적(내가 달리 말하는)이며, 때로는 현실 유리적(내가 힘들게 말하는)이다. 그러나 그것은 동일한 현실감의 물러감이 아니라고(누군가는) 말한다. 비현실의 경우, 현실에 대한 나의 거부는 어떤 환상을 통해 표명된다. 즉 내 주위의 모든 것이 상상적인 것이라는 한 기능에 비례하여 그 가치를 바꾸어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과 분리되며, 그의 사랑에 대한 유토피아나 우여곡절을 다른 측면에서 환상함으로써 세상을 비현실화시키는 것이다. '현실적인' 것이 모두 그를 방해하면 방해할수록 그는 이미지에 몰두한다. 그러나 현실 유리의 경우, 현실감을 상실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어떤 상상적인 대체물도 이를 보상하러 오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콜뤼슈의 포스터 앞에서 나는 "꿈꾸지"않는다(그 사람에 대해서조차도). 나는 더 이상 상상적인 것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굳어지고 응고되어 불변의 것, 다시 말해 비대체적인 것이 된다. 상상적인 것이(일시적으로)배제된 것이다. 전자의 경우 나는 신경증 환자이며 비현실적이나, 후자의 경우 나는 미치광이이며 현실 유리적이다.
(그렇지만 내가 만약 글쓰기를 지배할 수 있어 이 죽음을 말할 수만 있다면, 그때 나느 다시 살기 시작한다. 대조법을 사용하거나 감탄사를 연발하며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 "그때 하늘은 얼마나 푸르렀으며 희망 또한 얼마나 컸던가! 이제 희망은 패배하여 컴컴한 하늘로 날아가버렸네 ........ " 등등.)
7. 비현실적인 것은 수없이 많이 말해진다.(수많은 소설과 시들). 그러나 현실 유리적인 것은 말해질 수 없다. 만약 내가 그것을 말한다면(서투른 문장이나 지나치게 문학적인 표현으로 송곳마냥 찌를 수만 있다면), 그건 곧 거기서 빠져나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나는 로잔역 간이식당에 앉아있다. 옆 탁자에는 두 명의 보(vaud, 스위스의 州이름)사람이 잡답을 하고 있다. 그때 갑자기 현실유리의 구멍으로 자유로운 추락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 추락에 대해 재빨리 어떤 표지를 부여할 수 있다. 현실 유리란 바로 이런 거야, "로잔역 간이식당에서 스위스 사람의 목소리로 말해지는 저 둔탁한 상투적인 말." 그러자 현실 유리의 구멍 대신 하나의 활기찬 현싱, 즉 문자의 현실이 솟아올랐다(글을 쓰는 광인은 결코 완전히 미친 것이 아니다. 그는 다만 사기꾼일 뿐이다. 광기에 대한 어떤 예찬도 불가능하다.)



덧글
"글을 쓰는 광인은 결코 완전히 미친 것이 아니다. 그는 다만 사기꾼일 뿐이다." - 맞다! 실로 옳은 말이다!